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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성이 한반도를 휩쓸던 1950년 전란중, 대전시민들은 당시 최대의 관심사였던 전황을 상세하게 보도한 신문을 접하게 됐다. ‘대전일보’라는 임시 제호를 달고 첫 선을 보인 이 신문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이 유엔군과 함께 각 전선에서 맹공격을 펼쳐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대전일보의 태동은 이렇듯 6.25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애환과 궤를 같이하면서 시작됐다. 대전일보는 전쟁뉴스를 시시각각으로 기다리는 시민들과 피란민들 사이에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하루에 1만부나 팔려 ‘낙양의 지가를 높였다’는 말이 회자되곤 했다. 49년당시 대전시 인구가 7만-8만명(50년인구는 전란중이라 통계가 없음)에 불과했던 점에 비춰보면 대전일보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후 대전일보는 52년 9월 1일자로 타블로이드 배판 2면을 증면하는 등 성장을 거듭했으나 당시 어느 신문사나 마찬가지로 재정적 압박을 피할 수는 없었다. 56년 11월 1일 선화동 6-2번지(현 갤러리아동백점 옆)에 사옥을 신축 이전하는 등 사세를 확장하기는 했으나 재정난이 가중되자 남정섭(前 대전일보 회장), 박병배(前 대전일보 사장)씨를 새로운 주주로 맞이하는 용단을 내렸다. 실질적 사주로 자리잡은 故남정섭회장등은 대전일보가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신문은 영리적 목적이 아닌 시민의 눈과 귀요, 지역 여론을 선도하고 발전을 이루는 한축이라는 신념으로 기꺼이 신문사에 투자를 했으며 경영에 참여했다. 이어 남정섭 회장은 63년 박병배 사장 소유 주식을 모두 인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증자를 단행하고 각종 설비와 인력을 충원하는 등 사세확장과 신문 본령의 민주주의 수호와 지역발전의 언론책임을 다하는 신문으로 발전시켰다. 1973년 대전일보는 경영난을 겪던 중도일보를 매입 통합함으로써 지역 유일의 신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중도일보 통합은 1980년 외압에 의한 신군부의 언론통폐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대전일보가 오늘날 중부권 최대의 정론지로 우뚝 서기까지는 많은 풍랑을 극복해야 했다. 두번에 걸친 필화사건으로 인한 기자들의 구속사건, 세무사찰 등 독재 권력의 언론탄압을 견뎌내야 했다. 필화사건 첫 탄압은 1965년 3월 김정욱 당시 편집부장이 방송국에 사용될 시나리오 ‘송아지’를 집필했는데 그 내용이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무산계급을 선동했다는 죄목을 씌웠으나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전일보에 닥친 또 한번의 필화 수난은 1968년 7월 이지영 당시 사회부기자의 반공법위반 혐의 구속사건이었다. 정론직필로 기자가 구속되자 전국 각 언론은 이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등 여론이 거세지자 검찰은 구속적부심으로 이지영 기자를 석방하게 되었다. 국세청의 세무사찰은 대전일보 출범 이후 가장 큰 사건이자 위기의 역사로 기억 될만하다. 직원들의 일치된 단결과 불굴의 언론정신이 없었다면 대전일보사는 세무사찰을 견디다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세무사찰은 유신 당시 서울 서대문경찰서 뒤에 있던 국세청 본청 특수조사국이 직접 담당했다. 100일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1971년부터 1975년까지 5년간에 걸친 영업수익에 대한 각종 세금을 추징당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세무사찰은 고위층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설과 대전일보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었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나돌았다. 故 남정섭 전 대전일보 회장이 신문협회 회장자격으로 청와대회의에 참석했을 때에도 최고위층으로부터 대전일보가 비협조적이라는 위협적 발언까지 들었다. 세무사찰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주의 구속과 대전일보사의 소유권 찬탈이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대전일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연감 강매를 내세워 세금을 추징하는 것으로 기나긴 세무사찰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대전일보는 사세신장을 거듭, 1980년대 들어서 지역 최고의 언론기관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끊임없이 증면을 계속해 1988년 4월부터는 주간 96면을 발행하는 저력을 발휘했으며, 특히 서울 올림픽 기간 중에는 파격적인 증면을 연일 단행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1996년에는 지금까지 석간으로 발행하던 신문을 독자들에게 더욱 신선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과감히 조간으로 발행체제를 전환했으며 세로쓰기 글자체제도 읽기 쉬운 가로쓰기로 바꾸었다. IMF의 고통은 대전일보도 예외가 아니어서 97년 이후 경영상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2003년 사옥을 대전 갈마동으로 이전하면서 제2창간을 선언하고 사원들이 일치단결한 결과 사세는 다시 신장, 지역 최고의 신문으로서 위치를 더욱 굳건히 했다. (대전일보 홈페이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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